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11 테러 (문단 편집) == 왜 막지 못했는가 == 위에서도 계속 언급되었지만 당시 미국의 항공 보안은 지금과는 달리 구멍투성이였는데, 탑승객의 신원 파악조차 제대로 안 한 건 물론 조종실 문도 잠그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1969년 발생한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을 계기로 조종실 문을 꼭 잠그는 게 의무화되었다. 덕분에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에서 조종석 문을 잠그는 규정과 당시에 존재하던 항공보안관, 그리고 전명세 조종사의 희생으로 58명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심지어 무기로 사용될 여지가 있는 소지품까지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 9·11 테러 이전에도 [[초소형국민체]]의 여권은 신경쓰지 않았는데, [[시랜드 공국]]은 이걸 알아채고 여권을 대량 말소하였다.] [[테러와의 전쟁]]과 9·11 테러의 전조를 감지한 정보기관들은 90년대부터 테러를 큰 위협으로 여겨 우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비롯해 연이은 대사관 테러와 [[USS 콜 테러사건]] 등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알카에다]]와의 전쟁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정보기관 일선의 판단과 우려에 비해 미국은 [[소련 붕괴]] 후 찾아온 90년대의 대호황에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조직 따위가 초강대국 미국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클린턴 행정부 전반기는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셧다운]]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인해 중동의 테러조직 따위에는 관심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이후 행정부가 뒤늦게나마 관심을 두려 할 시기에 이번엔 [[유고슬라비아]]에서 [[코소보 전쟁]]이 터져서 모든 관심은 [[발칸 반도]]로 집중되면서 또다시 테러 얘기는 아오안. * 그러다가 [[대사관]]이 공격당하는 등 테러에 대한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세 번이나 암살 작전이 취소되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이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국제법 위반 등의 이유로 두 눈 뜨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미리 화근을 제거할 기회를 놓쳤다는 정황들이 발견되면서 클린턴 정권에도 9·11 테러의 책임이 일정 정도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 당시 미국의 항공보안은 매우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당시도 미국의 항공교통수단은 대한민국의 기차 같은 개념으로 조종석이 달랑 커튼 한장으로 객실과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고, 탑승구도 티켓 미소지자도 버젓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스위스 나이프]] 같은 자그마한 칼은 문제없이 기내에 들고 갈 수 있었다. 실제로 9.11 테러의 납치 범인들도 스위스 나이프 같은 작은 칼로 범행을 저질렀다. 미국의 항공보안에 이러한 심각한 허점들이 있다는 것이 지적되어 개선을 요구하는 의회, 정부 보고서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올라왔으나 무시되었다. 이러한 보안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위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와 [[연방수사국|FBI]]를 비롯한 정보당국이 항공국에 위험인물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정보 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 CIA와 FBI를 비롯한 정보당국끼리도 정보 공유를 꺼렸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FBI가 정보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CIA는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이었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FBI와 CIA간의 반목은 원체 유명했지만, 특히 [[콘트라 사건]]을 계기로 두 집단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된다.] 결국 테러리스트들을 찾는 수사관은 단 1명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났고, 이 문제점은 테러가 일어날 때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CIA는 테러 발생 후 자신들이 경고했으나 정부가 무시했다는 것만 강조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할 생각만 하다가 실속은 없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문]] 스캔들이다. * 부시 행정부의 안보 담당들도 취임한지 1년도 안 되었다 보니 [[알카에다]]의 존재와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알카에다의 위험도가 고조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아랍 쪽 첩보 담당자들을 제외하면 미국 수뇌부들 중 그 누구도 알카에다의 위험성과 존재를 알지 못했다. 클린턴 정권의 안보 담당자들이 업무를 인계하면서 '알카에다를 경계하라'고 이야기하자 부시의 안보 담당자들이 "알카에다가 도대체 뭐요?"라고 되물어볼 정도였다. 게다가 2001년 4월, 미 [[P-3|EP-3E]] 정찰기가 중국 공군 [[J-8]]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 섬]]에 불시착한 이른바 하이난 섬 충돌사고로 [[중국]]과의 사이가 냉각되면서 알카에다 따위에게는 전혀 신경을 쓸 여건이 안 되었던 상황이었다. * [[연방수사국|FBI]]가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로 건물에 테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2001년 8월에 보고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테러리스트들이 거의 모든 준비를 마쳤을 시기였다. * [[아프가니스탄]]의 [[북부동맹]]을 지원해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작전은 [[2001년]] [[9월 10일]]까지 부시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이기만 한 채 결재되지도 못한 상태였다. * 민간항공과 공군이 사용하는 용어도 달라 테러 초기에 정보전달이 잘 되지 않아 혼동이 발생해 이미 추락한 비행기를 찾는 등의 혼선이 벌어졌다. 게다가 [[미합중국 공군|미국 공군]]에서는 적국의 침공만 상정하고 있던 상태라 제대로 된 초기대응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내륙에서 날아와 공격을 가했는데도 공군의 전투기들은 엉뚱하게도 대서양 방향으로 출격했다. 오로지 [[미합중국 공군|미 공군]]의 강력한 제공권 장악력만 믿고 있던 당시 미국의 방공체계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방공부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리 방공무기가 강력하다 해도 납치된 자국민이 타고 있는 자국의 민항기를 자국 공군이 격추시킨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 [[릭 레스콜라]]라는 보안 전문가는 언젠가 [[예언자|비행기를 이용해서 타워에 들이받는 테러를 예견했고]]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릭은 당일 안전교육 중 테러가 일어나자 2700명 가량의 [[모건 스탠리]] 직원들을 구하고 사람들을 더 구하려다가 건물이 붕괴되어 죽고 말았다. * 아랍권에서 갈수록 커져가던 [[반미]] 정서로 인해 발생한 테러 조직들이 점점 조직적이고 강력해지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를 과소평가해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 [[하인리히의 법칙|거기에다가 정보기관들 간의 상호 삽질과 알력싸움, 그동안 계속 방치되어 온 미흡한 보안 규정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